이 4가지를 요구한다면, 나를 이용하는 사람입니다

사람을 오래 만나다 보면 이상하게 마음이 불편해지는 관계가 있습니다. 크게 싸운 적도 없고 대놓고 무례한 사람도 아닌데, 그 사람을 만나고 나면 자꾸 손해 본 것 같고 피곤합니다. 처음에는 내가 예민한가 싶어 그냥 넘어가기도 합니다.

그런데 이런 관계를 자세히 들여다보면 한 가지 특징이 있습니다. 상대가 원하는 것을 얻어가는 과정에서 늘 내가 미안해지고, 내가 양보하고, 내가 움직인다는 것입니다. 말이 부탁이지 요구가 되어버리는 이상한 일이 벌어집니다.

부탁을 들어주고도 마음이 편하지 않다면 부탁의 내용보다 그 사람이 나를 움직이는 방식을 한번 살펴볼 필요가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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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이런 부탁할 사람이 너밖에 없어.”

이 말을 들으면 거절하기가 쉽지 않습니다. 나를 믿고 의지한다는 말처럼 들리고, 그 사람에게 내가 꽤 중요한 사람이라는 생각도 들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제가 사람들을 지켜보면서 느낀 것은 ‘너밖에 없다’는 말에는 전혀 다른 세 가지 의미가 있다는 것입니다. 정말 믿을 사람이 나밖에 없다는 뜻일 수도 있지만, 부탁하면 들어줄 사람이 나밖에 없다는 뜻일 수도 있습니다. 그리고, 부탁하면 들어주는 사람이라는 뜻일 수도 있습니다.

이렇게 말하는 사람도 세 가지 유형으로 분류할 수 있습니다. 별일 없을 때도 안부를 묻고 내 사정에도 관심을 갖는 사람이라면 믿음에서 나온 말일 가능성이 큽니다.

반대로 평소에는 연락이 없다가 무언가 필요할 때만 유난히 친근해지는 사람이 있습니다. 돈이 필요하면 연락하고, 일이 꼬이면 찾아오고, 누군가의 도움이 필요하면 갑자기 “너밖에 없다”고 말합니다.

그런데 이렇게 같은 말로 필요하면 부탁하는데, 이보다 더 위험한 사람, 충격이 더 큰 사람은 오히려 평상시 잘 지내고 있는 사람입니다. 그들의 말을 신용하고, 도와주는 것에 의미를 두기 때문입니다.

마지막 두 가지 유형의 사람은 부탁이 아니라 요구가 되어 버립니다. 강하게 말해야 요구가 아닙니다. 애절한 부탁인데도 요구처럼 변해버리는 마음 아픈 일이 벌어집니다.

이런 사람은 사람을 찾는 것이 아니라 해결책을 찾는 것입니다. 그리고 그 해결책으로 내가 가장 편한 것입니다.

더 분명하게 알 수 있는 방법이 있습니다. 내가 부탁을 들어주지 못했을 때 상대의 태도를 보는 것입니다.

정말 나를 믿는 사람은 아쉽더라도 “알았어. 어쩔 수 없지”라고 받아들입니다. 하지만 나를 이용하는 사람은 “너까지 이러면 어떡하냐”며 섭섭함을 드러냅니다.

여기에는 묘한 차이가 있습니다. 나를 소중하게 생각하는 사람은 내가 곤란해지는 것까지 걱정하지만, 나를 필요로 하는 사람은 자신의 곤란함에서 벗어나는 것이 먼저입니다.

그래서 누군가가 “너밖에 없다”고 말할 때 그 말에만 마음이 움직여서는 안 됩니다. 그 사람이 나를 좋아하는 것인지, 아니면 내가 해주는 것을 좋아하는 것인지 봐야 합니다.

필요할 때만 나를 특별한 사람으로 만드는 것은 믿음이 아니라, 관계를 이용해 도움을 얻는 방식일 수 있습니다.

정말 한 번뿐이라면 아무 문제가 없습니다. 살다 보면 누구에게나 혼자 해결하기 어려운 일이 생기고, 가까운 사람에게 도움을 청할 수도 있습니다.

문제는 “이번 한 번만”이라는 말을 유난히 자주 하는 사람입니다. 지난번에도 한 번만이라고 했는데 이번에도 똑같은 말을 합니다.

“이번에만 좀 빌려줘.”
“이번 한 번만 네가 대신 해줘.”
“이번만 좀 넘어가 줘.”

이런 부탁이 반복되는 데는 이유가 있습니다. 부탁하는 사람은 과거의 부탁까지 생각하면 자신도 염치가 없다는 것을 알기 때문에 지금의 부탁만 보게 만듭니다.

지난번 일을 꺼내면 “그건 그때고, 이번에는 정말 급해서 그래”라고 합니다. 매번 사정은 다르지만, 결과는 같습니다. 결국 또 내가 도와주게 됩니다.

여기서 더 중요한 문제가 생깁니다. 내가 계속 부탁을 들어주면 상대가 반드시 더 고마워지는 것은 아니라는 것입니다.

오히려 사람은 반복되는 호의에 빠르게 익숙해집니다. 처음에는 “정말 고맙다”고 하던 사람이 몇 번 지나면 부탁하는 것을 어려워하지 않습니다.

그러다가 어느 순간 내가 거절하면 서운해합니다. 열 번 도와준 고마움보다 열한 번째에 거절한 섭섭함을 더 크게 느끼기도 합니다.

이때부터 호의의 성격이 바뀐 것입니다. 처음에는 내가 선택해서 해준 일이었는데 상대의 머릿속에서는 내가 당연히 해주는 일이 되어버린 것입니다.

그래서 “이번 한 번만”이라는 말을 들으면 이번 부탁만 보면 안 됩니다. 지난번에는 어땠는지, 그 전에는 어땠는지 같이 봐야 합니다.

정말 한 번 어려움에 처한 사람인지, 아니면 매번 다른 이유를 붙여 같은 사람에게 기대는 사람인지 그 차이를 알아야 합니다. 양심 없는 교활한 요구입니다.

‘이번 한 번만’이 반복된다면 그 사람은 한 번의 도움을 구하는 것이 아니라, 내가 지금까지 거절하지 못했다는 사실을 이용하고 있는 것입니다.

부탁을 쉽게 하는 사람에게서 자주 들을 수 있는 말이 있습니다.

“잠깐이면 돼.”
“별거 아니야.”
“금방 끝나.”

듣고 보면 정말 별일 아닌 것 같습니다. 그래서 내키지 않아도 ‘이 정도 가지고 거절하기도 그렇다’는 생각에 들어주게 됩니다.

그런데 막상 해보면 잠깐이 아닐 때가 많습니다. 이동해야 하고, 기다려야 하고, 사람을 만나야 하고, 전화를 해야 하고, 신경까지 써야 합니다.

제가 이런 말을 들을 때 중요하게 보는 것은 실제로 몇 분이 걸리느냐가 아닙니다. 왜 부탁하는 사람이 남의 수고가 별것 아니라고 판단하느냐는 것입니다.

한 시간 걸리는 일도 내가 기꺼이 해주고 싶으면 부담스럽지 않을 수 있습니다. 반대로 10분 걸리는 일이라도 하기 싫거나 곤란한 사정이 있다면 충분히 부담스러울 수 있습니다.

그런데 “잠깐이면 되는데 그것도 못 해줘?”라고 말하는 순간 이야기가 달라집니다. 부탁을 거절할 내 사정과 판단을 인정하지 않는 것이기 때문입니다.

정말 미안한 마음으로 부탁하는 사람은 오히려 반대로 말합니다. “시간 괜찮아?”, “바쁘면 안 해줘도 돼”, “어려우면 다른 방법을 알아볼게”라고 합니다.

자기가 부탁하는 일이 상대에게는 번거로울 수 있다는 것을 알고 있기 때문입니다. 이것이 상대를 존중하는 사람과 이용하는 사람의 큰 차이입니다.

특히 “별것도 아닌데”라는 말을 조심할 필요가 있습니다. 정말 별것 아닌 일이라면 오히려 자신이 하면 됩니다.

자기가 하기 싫어서 남에게 부탁하면서 그 일을 별것 아니라고 말하는 것은 앞뒤가 맞지 않습니다. 부탁을 작게 말하는 이유는 일이 작아서가 아니라 내가 거절하기 어렵게 만들기 위해서일 수 있습니다.

내 수고를 자기가 작다고 정하고 거절하면 내가 야박한 사람처럼 느껴지게 만든다면, 결국 내 미안한 마음을 이용하고 있는 것입니다.

이 말은 앞의 세 가지보다 훨씬 거절하기 어렵습니다. 부탁을 들어주지 않았을 때 생길 문제까지 내 책임처럼 느끼게 만들기 때문입니다.

“지금 네가 안 해주면 방법이 없어.”
“네가 좀 도와줘야 해결돼.”
“지금 거절하면 나 정말 큰일 나.”

이런 말을 들으면 마음이 급해집니다. 내가 조금만 도와주면 해결된다는데 외면하는 사람이 되는 것 같아서 싫어도 움직이게 됩니다.

그런데 이럴수록 한 가지를 먼저 생각해야 합니다. 지금 벌어진 문제를 만든 사람이 누구인가 하는 것입니다.

자신이 미리 준비하지 않아서 생긴 일일 수도 있고, 약속을 지키지 않아서 생긴 일일 수도 있습니다. 계속 미루다가 마지막 순간이 돼서야 급해진 것일 수도 있습니다.

그런데 어떤 사람은 자신이 감당해야 할 다급함을 주변 사람에게 넘깁니다. “내가 큰일 났다”에서 끝나는 것이 아니라 “그러니까 네가 도와줘야 한다”로 넘어가는 것입니다.

더 심한 경우에는 내가 거절했을 때 이후의 결과까지 내 탓으로 돌립니다. “그때 네가 도와줬으면 이렇게 안 됐잖아”라고 말하기도 합니다.

하지만 그 사람이 곤란하다는 사실과 내가 책임져야 한다는 것은 전혀 다른 문제입니다. 가까운 사람이 어려움에 처하면 도와줄 수 있지만, 그것은 어디까지나 내가 선택해서 하는 일입니다.

특히 비슷한 위기가 반복되는 사람이라면 더 주의해서 봐야 합니다. 매번 급한 일이 생기고, 매번 누군가가 해결해 주고, 시간이 지나면 또 같은 일이 생기는 경우가 있습니다.

이런 사람에게 계속 도움을 주면, 문제를 해결해 주는 것이 아니라 스스로 책임질 기회를 없애는 결과가 될 수도 있습니다. 결국 그 사람은 자신의 실수를 고치는 대신 위기가 생길 때마다 자신을 구해줄 사람부터 찾게 됩니다.

그래서 “지금 네가 안 도와주면 큰일 난다”는 말을 들었을 때는 상대의 다급함에 바로 끌려갈 필요가 없습니다. 정말 내가 책임져야 할 일인지, 아니면 그 사람이 자신의 책임을 내 책임감에 얹고 있는 것인지부터 구분할 필요가 있습니다.

자신이 만든 위기를 내가 해결해야 할 일처럼 느끼게 한다면, 그 사람은 도움을 구하는 것을 넘어 내 책임감과 죄책감을 이용하고 있는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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