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악한데 좋은 사람으로 보이는 고단수 특징

사람을 만나면서 정말 조심해야 할 사람은 처음부터 영악해 보이는 사람이 아닙니다. 그런 사람은 오히려 경계하기 쉽습니다. 더 알아보기 어려운 사람은 주변에서 평판도 좋고, 실제로 만나봐도 친절하고 괜찮아 보이는 사람입니다. 그런데 이상하게 오래 지내다 보면 그 사람은 별로 손해 보는 일이 없습니다.

그렇다고 대놓고 자기 이익만 챙기는 것도 아닙니다. 오히려 양보할 줄도 알고, 다른 사람을 배려하는 모습도 보입니다. 그래서 쉽게 의심하기 어렵습니다.

저는 이런 사람을 단순히 영악하다고만 보기는 어렵다고 생각합니다. 자기 몫은 놓치지 않으면서도 주변에는 좋은 사람으로 남을 줄 안다면, 그건 한 단계 더 높은 고단수의 영악함이기 때문입니다.

오늘은 영악한데 좋은 사람으로 보이는 ‘고단수’의 특징에 관해 말씀드릴까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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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악한 사람이라고 해서 항상 자기 것만 챙기는 것은 아닙니다. 오히려 의외로 잘 베풉니다. 밥을 사기도 하고, 선물을 챙기기도 하고, 어려운 일이 생기면 먼저 나서서 도와주기도 합니다.

그래서 처음에는 참 괜찮은 사람이라고 생각하기 쉽습니다. 그런데 오랫동안 지켜보면 한 가지 특징이 보입니다. 이 사람의 호의에는 묘하게 방향이 있다는 것입니다.

자신에게 도움이 될 만한 사람에게는 아주 잘합니다. 직장에서 영향력이 있는 사람, 나중에 부탁할 일이 생길 것 같은 사람, 자신에게 정보를 줄 수 있는 사람에게는 작은 것까지 세심하게 챙깁니다.

반대로 아무리 잘해줘도 자신에게 돌아올 것이 없다고 판단하면 태도가 달라집니다. 갑자기 차갑게 대하는 것은 아닙니다. 연락이 조금씩 줄고, 관심이 줄고, 굳이 시간을 쓰지 않습니다.

더 영악한 사람은 자신이 베푼 것을 절대 잊지 않습니다. 겉으로는 아무 대가도 바라지 않는 것처럼 행동하지만 머릿속에는 누가 자신에게 무엇을 받았는지가 남아 있습니다.

그러다가 필요한 순간이 오면 자연스럽게 꺼냅니다. “그때 내가 도와줬으니까, 이번에는 네가 해줘”라고 노골적으로 말하지도 않습니다. 상대가 거절하기 어렵게 분위기를 만듭니다.

제가 사람을 보면서 느낀 것은 진짜 베푸는 사람과 계산하며 베푸는 사람은 처음에는 구분하기 어렵다는 것입니다. 둘 다 친절하기 때문입니다. 차이는 시간이 지나야 보입니다.

진짜 좋은 사람은 자신에게 별 도움이 되지 않는 사람에게도 태도가 크게 달라지지 않습니다. 반면 영악한 사람은 사람마다 쓰는 시간과 친절의 정도가 놀라울 만큼 정확합니다.

결국 중요한 것은 얼마나 많이 베푸느냐가 아닙니다. 자신에게 돌아올 것이 없는 사람에게도 똑같이 대하는가를 보면 그 사람의 진짜 마음이 보입니다.

누군가에게 부탁하는 것은 잘못이 아닙니다. 사람은 누구나 도움을 주고받으며 살아갑니다. 문제는 자신이 원하는 일을 상대가 원해서 하는 것처럼 만드는 사람입니다.

영악한 사람은 부탁을 아주 자연스럽게 합니다. “이것 좀 해주십시오”라고 직접 말하기보다 상대가 먼저 나서게 만듭니다.

“이런 건 당신이 정말 잘하지 않습니까?” “당신이 하면 금방 끝날 것 같은데요.” 이런 식으로 능력을 인정해 주는 것처럼 말합니다. 듣는 사람도 기분이 나쁘지 않습니다.

어떤 사람은 책임감까지 건드립니다. “나는 괜찮은데 다른 사람들이 많이 힘들 것 같습니다.” 이렇게 말하면 가만히 있기가 어려워집니다.

더 교묘한 방식은 자신의 이익을 모두의 이익처럼 만드는 것입니다. 자신이 원하는 일인데 “이렇게 하는 것이 우리 모두에게 좋지 않겠습니까?”라고 말합니다.

결과적으로 가장 큰 이익은 자신이 얻지만, 과정에서는 공동체를 생각하는 사람처럼 보입니다.

이런 일을 반복해서 겪다 보면 이상한 상황이 생깁니다. 내가 분명 자발적으로 한 것 같은데 돌아보면 그 사람이 원했던 일을 계속하고 있습니다.

그래서 영악한 사람을 알아보려면 말보다 결과를 볼 필요가 있습니다. 누가 부탁했는지를 따지는 것보다 그 일이 끝났을 때 가장 편해지고 가장 큰 이익을 얻는 사람이 누구인지 보는 것입니다.

영악한 사람은 상대를 억지로 끌고 가지 않습니다. 오히려 상대가 스스로 걷게 만듭니다. 그래서 이용당한 사람조차 자신이 이용당했다는 사실을 늦게 깨닫습니다.

사람의 진짜 모습은 일이 잘될 때보다 일이 잘못됐을 때 더 선명하게 드러납니다. 특히 책임이 필요한 순간을 보면 그 사람이 어떤 사람인지 알 수 있습니다.

영악한 사람은 일이 잘될 때는 적극적입니다. “우리가 잘했습니다”, “우리 생각이 맞았습니다”라고 말하며 자연스럽게 성과 안으로 들어옵니다.

그런데 문제가 생기면 말이 달라집니다. “나는 그렇게까지 하자는 뜻은 아니었습니다.” “최종 결정은 제가 한 것이 아닙니다.” 어느 순간 ‘우리’가 사라지고 ‘나’와 ‘그들’이 나뉩니다.

이런 사람은 중요한 순간에 자기 의견을 애매하게 남기는 경우가 많습니다. “저는 어느 쪽이든 괜찮습니다.” “다른 분들 의견대로 하십시오.” 겉으로 보면 양보하는 사람 같습니다.

하지만 매번 중요한 결정에서만 이런 태도를 보인다면 조금 다르게 볼 필요가 있습니다. 선택을 남에게 맡기면 결과가 나쁠 때 책임에서도 빠질 수 있기 때문입니다.

좋은 사람도 양보합니다. 하지만 자신이 함께 결정한 일이라면 결과가 나빠졌을 때도 함께 책임집니다. “저도 동의했던 일이니 같이 해결해 봅시다”라고 합니다.

영악한 사람은 양보와 책임 회피를 아주 자연스럽게 섞습니다. 결정권은 다른 사람에게 주는 것처럼 보이지만, 결과가 좋으면 자신의 몫을 챙기고 결과가 나쁘면 결정한 사람의 책임으로 돌립니다.

그래서 사람을 판단할 때는 평소에 얼마나 자신감 있게 말하는지만 볼 것이 아닙니다. 불리한 결과가 나왔을 때도 자기 몫의 책임을 인정하는 사람인지 봐야 합니다.

책임지는 순간에는 말솜씨보다 사람의 됨됨이가 훨씬 정확하게 드러납니다.

영악한 사람은 의외로 싸움을 싫어하는 것처럼 보입니다. 목소리를 높이지 않고, 상대에게 심한 말을 하지도 않습니다. 그래서 주변에서는 성격이 온화하다고 생각하기 쉽습니다.

하지만 싸움을 피하는 것과 나쁜 사람으로 보이는 것을 피하는 것은 전혀 다릅니다.

이런 사람은 누군가 마음에 들지 않아도 직접 공격하지 않습니다. 대신 다른 사람에게 아주 조심스럽게 이야기를 꺼냅니다.

“내가 이런 말을 하는 것이 맞는지 모르겠습니다.” “그 사람도 나쁜 사람은 아닌데 조금 걱정되는 부분이 있습니다.” 이렇게 시작합니다.

그다음부터 상대에게 불리한 이야기가 나옵니다. 그런데 말투가 워낙 조심스럽기 때문에 듣는 사람은 이것을 험담이라고 느끼지 못합니다. 오히려 고민 끝에 어렵게 말해주는 것처럼 받아들입니다.

이 방식이 영악한 이유는 자신은 좋은 사람으로 남으면서 상대의 평판만 떨어뜨릴 수 있기 때문입니다. 자신이 직접 싸울 필요도 없습니다. 주변 사람들이 상대를 의심하기 시작하면 이미 목적은 어느 정도 이루어진 것입니다.

특히 갈등이 생겼을 때 자기 잘못은 거의 말하지 않고 상대가 자신에게 어떻게 했는지만 설명하는 사람이 있습니다. 사실만 말하는 것처럼 보여도 자신에게 유리한 사실만 골라 말하면 이야기는 완전히 달라집니다.

저는 사람 사이의 갈등을 들을 때 한쪽 이야기만 듣고 판단하면 안 된다는 것을 여러 번 느꼈습니다. 이상할 정도로 한 사람만 상식적이고 다른 사람만 이상하게 보이는 이야기라면 빠진 내용이 있을 가능성도 생각해 봐야 합니다.

정말 괜찮은 사람은 갈등이 생겼을 때 자신의 부족한 부분도 인정할 줄 압니다. “그 사람이 잘못한 것도 있지만 저도 말을 심하게 했습니다”라고 말할 수 있습니다.

반대로 영악한 사람은 자신의 잘못을 숨기는 데서 끝나지 않습니다. 자신은 끝까지 상식적이고 배려한 사람으로 남도록 이야기를 구성합니다.

그래서 누군가를 판단할 때 그 사람이 얼마나 점잖게 말하는지만 봐서는 안 됩니다. 갈등이 생길 때마다 이상하게 그 사람만 피해자가 되고, 상대방만 문제 있는 사람이 된다면 그 반복되는 패턴을 볼 필요가 있습니다.

영악한 사람은 싸움에서 이기려고 목소리를 높이지 않습니다. 자신은 싸우지 않은 사람으로 남으면서도 상대가 지게 만드는 방법을 알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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